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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널 때 신호등 색깔은 무엇일까요? 한 전학생의 이야기

길을 건널 때 신호등 색깔이 무엇일까요? 보통 파란 불이나 초록 불이라고 사람들은 대답한다. 하지만 산골 동네에서 도시로 전학 온 한 아이는 다르게 대답했다.
길을 건널 때 신호등 색깔은 무엇일까요? 한 전학생의 이야기
Photo by Carlos Alberto Gómez Iñiguez / Unsplash

1990년대 초 어느 날, 한 아이가 가족과 함께 살던 산골을 떠나 도시로 올라왔다. 아이는 이삿짐 트럭 한쪽에 앉아 처음 보는 도시의 풍경을 구경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들을 보며 엄청나게 좋아했다. 도시로 올라온 이유는 아버지의 직장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일터가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산골에서 다니던 학교를 떠나 도시의 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쪽지 시험

어느 날, 학급에서 쪽지 시험을 봤다. 그 시험은 전학생이 도시로 와서 처음으로 치르는 시험이었다. 아이에게 그 시험은 자신이 시골에서 왔지만, 도시 아이들에게 나도 너희들 못지않게 공부했다고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쪽지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길을 건널 때, 신호등 색깔은 무엇일까요?

전학생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였고, 자랑스럽게 답을 적었다. 쪽지 시험의 채점이 끝난 후, 선생님이 전학생을 교실 앞으로 불렀다. 전학생은 칭찬하시려고 부르는 건가? 기대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실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길을 건널 때 신호등 색깔은 무엇이죠?

아이들은 다 같이 대답했다.

파란 불이요.

선생님은 전학생을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잘 알고 있네요. 그런데 우리 반에서 혼자 틀린 친구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잘 도와주세요.

전학생은 대답했다.

저는 빨간 불에 건너요.

그 교실에 있는 모두가 깔깔 웃었다. 전학생은 공개적으로 망신당했다. 전학생에게는 '시골에서 온 촌놈', '산에서 온 괴물'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전학생의 대답

전학생은 '빨간 불에 건너요.' 라고 대답했다.

빨간 불이라고? 전학생 혼자 다르게 답했다. 전학생은 정말 틀린 답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다. 전학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답, 정답을 적었다. 빨간 불에 건넌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전학생의 생각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전학생에게 네가 틀렸다고 말했다. 결국 전학생은 반 친구들 앞에서 망신당했다.

왜 전학생은 빨간 불에 건넌다고 알고 있었을까?

전학생은 강원도의 어느 산골 동네에서 살았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탄광사업소가 있던 탄광촌이었고, 아버지는 광부였다. 동네에서 읍내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산길(지름길)을 걸어가는 방법이었다.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두 번째는 버스를 타는 방법이었다.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만 운행하는 버스를 타면 읍내까지 3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걷는 것이 더 나았다.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의 모습도 도시와는 달랐다. 집을 지을 때 바닥의 높이를 최소 70~80센티미터 정도 높였다. 추운 겨울이나 먹이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야생동물이 민가로 내려오는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용차가 단 한 대 있었다. 그 차는 가장 잘 사는 집에 있었다. 전학생이 가장 흔하게 본 차량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불도저였다. 또는 동네 아저씨들이 운전하는 트럭이나 덤프트럭이었다.

동네에는 유일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작은 도로가 있었다. 이 도로는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갈 수 있는 국도로, 탄광촌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도로였다. 그 도로에는 마을의 유일한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아닌, 운전자를 위한 차량 신호등이었다.

도시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그 전학생은 길을 건널 때,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건넜다. 전학생이 살던 동네에는 보행자 신호등이 없었다.

전학생은 도시의 국민학교에 다니는 내내 겉돌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민해 볼 지점

만약 선생님이 전학생에게 '빨간 불'이라고 적은 이유를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전학생 이야기는 실제 내 경험담이다. 탄광이 폐쇄되고 아버지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우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도시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행동에는 나쁜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전학생이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려는 좋은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산골 동네 출신이라는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이유로' 이유로 나는 '산에서 온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연히 배우자에게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글로 남길지 말지 고민했다. 최근에 읽은 책 '친애하는 슐츠씨'의 '세상의 모든 멜라니들'이라는 챕터를 읽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을 어떤 아이의 입장을 어른들이 조금 더 배려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전학생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다면, 다음 글은 2024년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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