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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씨'를 읽고

차별과 혐오 문제에 대해서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라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
'친애하는 슐츠씨'를 읽고

실제 뵌 적은 없지만, 홍윤희님의 추천사를 페이스북에서 읽고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추천사의 내용처럼 다양성, 편견, 차별에 관한 이야기들이 책 한권에 한데 엮여 있었다. 흥미로운 주제라서 너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배우자에게도 공유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지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책에는 '여자 옷과 주머니'라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와 동시에 내가 운영했던 하이브아레나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선 하이브아레나를 소개하자면, 배우자와 내가 2014년 말부터 2019년까지 운영했던 코워킹&코리빙 스페이스다. 강남에서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그리고 서비스를 코리빙으로 바꿔서 대방동에서 운영했다. 우리의 고객들은 외국인 원격근무자들이자 개발자, 디자이너들이었다. 미국(실리콘밸리)과 유럽 등의 55개국에서 한국을 찾아온 약 400명에 달하는 외국인 원격근무자들이 우리의 고객이자 친구였고 가족들이었다.

한국에서 정말 보기 드문 글로벌 커뮤니티였다. 포브스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우리를 선정해주기도 했고, 그 외 다른 글로벌 미디어에도 등장했었다. 우리가 좀 잘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너그러이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코워킹으로는 한 공간에서 함께 일했고, 코리빙에서는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았다.

다시 ‘여자 옷과 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가자면, 당시 하이브아레나에 함께 살았던 친구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 기억을 소환하자면 독일에서 온 줄리아가 액정이 큰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 그걸 본 내가 탁자 모서리 등에 부딪히면 액정 깨질텐데 조심해. 주머니에 넣고 다녀라고 말했다. 줄리아가 주머니에 이 큰 핸드폰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크리스가 보여주며 어 그냥 들어가는데?라고 말했고 그걸 본 줄리아는 신기해했다.

우리는 그 주제로 몇 시간을 이야기나눴다. 왜 주머니에 차이가 있는거지? 당시 있던 친구들의 나라, 미국, 한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등의 옷, 브랜드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여성 옷 중에서 주머니가 큰 옷을 본 적이 있는지 공유하고, 이거 왜 이렇지? 의문을 가졌다.그 때의 대화는 정말 사소하지만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함 혹은 차별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머니와 비슷하게 나눈 대화 주제는 패트병이었다. 정확히는 패트병 뚜껑이다. 콜라나 스프라이트와 같은 패트병 음료를 먹을 때 남성들은 쉽게 열어서 먹는다. 그런데 여성들과 아이들, 노인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좋든 싫든 성인 남성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서진이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이 주로 즐겨먹는 음료(뽀로로 혹은 파워오투(좀 크면))들을 보면 성인들의 도움없이는 스스로 먹기 힘들다.

테크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인종과 문화가 다른 이들이 모여 나눈 대화의 주제는 주로 차별과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개발자들이 모여있으니 기술, 스타트업 이야기를 할거라고 사람들은 오해했다.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면 그 속에서 차이점이 보였다. 그리고 새벽 늦게까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다룬 주제들은 평범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시간이 그립다.

대놓고 보이는, 내가 경험한 차별에 대해 적자면, 당시 우리가 머문 동네는 군인들의 가족이 사는 동네였다. 해군회관과 공군회관이 있는 동네였다. 그 지역에 사는 동안 나는 3~4번의 경찰을 우리 집에서 만났다. 경찰이 찾아온 이유는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갔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밤에 찾아오기도 했고, 낮에 찾아오기도 했다.

경찰이 말한 도둑들은 다 내 친구들이었다. 한 명은 약간 지저분한 스타일의 패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염이 있고 덩치가 큰 백인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근육질의 흑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로 그들을 판단하고 신고한 것이다. 외모를 빼고 그들의 배경을 놓고 보자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빅테크 기업 혹은 아이비리그를 나왔다. 동네 주민분들이 그들의 출신 학교를 듣고 정말 좋아했었다.그렇게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뭐라고 해야할까? ㅎㅎㅎ 물론 그 뒤에도 여전히 신고는 계속 있었다. 경찰도 나중에는 귀찮아서인지 그냥 나에게 별 일 없지요?라고 전화만 했다. 그들도 매번 오는 게 힘들었을거다.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함께한 삶이 그동안 내가 가볍게 넘겼던 것들을 새롭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 때부터였다. 집 밖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드디어 살 거 같다."라고 배우자와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집 밖이 너무 숨막히는 느낌이었다. 어깨를 툭 치고 사과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어른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보이지 않는 차별 혹은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숨막힐 정도였다. 퍼스널 스페이스의 부족은 더 민감하게 느껴졌다. 외출하고 돌아올때마다 ‘이제 살거 같다.’고 항상 말했다.

집 안과 밖에서 내가 느끼는 온도 차가 확연하게 다르다보니, 정확히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들에 대해서 민감해졌다. 솔직히 나는 불편함을 느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불편함없이 살 수 있는 당시 30대 후반의 성인 남성이었다. 여성, 아이,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들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면 나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지금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내 나이가 40대 초반이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종료하고(당시 각 나라들이 국경을 강제로 닫기는 시점이었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했다. 육아를 전담하는 이유는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남성으로써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많은 아빠들이 육아에 있어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겠지만.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높다는 스웨덴도 베이비부머(아버지 세대) 남성들은 우리의 아버지 세대와 비슷했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아버지는 남성이 주방에 들어가면 큰일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1970년대에 육아휴직이 도입되고 1990년대에 아빠에게 의무적으로 할당되었다. 불과 50년 전에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변화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하나둘씩 모였을때 변화는 예상보다 조금 빨리 일어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왕이면 4050 남성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미세한 차별 혹은 혐오를 느끼고 있다면 책에 등장하는 해외의 이야기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느끼지 못한 이런 것들이 존재했구나라고 느끼실거다.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북토크를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다. 한 번 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