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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돌아보며

2022년이 끝나가고 있다.
2022년을 돌아보며
Photo by zero take / Unsplash

올해가 이제 2일 남았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른 느낌이다. 회고를 적는 이유는 내년에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배우자의 파트너.

코로나 이전에는 배우자와 함께 코리빙 스페이스인 하이브아레나를 창업하여 함께 일했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시점과 맞물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잠시 쉬어가는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왔다. 다행히 배우자는 지인의 추천으로 일을 시작했고, 올해 본인이 원하는 커리어의 첫 발을 떼었다.

당시, 배우자의 이야기로는 지인의 추천을 통해 소개받은 일은 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갈증을 지울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모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팀장급으로 입사했지만, 경영진의 미숙한 온보딩과 가스라이팅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배우자는 많이 지쳤고 힘들어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화가 정말 많이 났다.

그 일을 계기로, 배우자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아내를 테크 리쿠르터로 추천합니다."는 글을 썼다. 다행히, 평소에 배우자가 지난 기간동안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화제가 되었다. 해당 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이후, 배우자는 최소 20개가 넘는 회사와 커피챗을 진행하였고, 플라네타리움이라는 회사에 테크 리쿠르터로 입사했다. 전문가로서의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하는 배우자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내를 테크 리쿠르터로 추천합니다
테크 리쿠르터를 찾는 창업자 그리고 회사들을 위해 작성했다.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가지 인재를 꼭 데려가셨으면 좋겠다.

종종 내가 쓴 글을 읽어봤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주변 여성 지인들로부터 약간의 칭찬(?)을 듣기도 한다. 기분 좋은 일이며, 보람을 느낀다. 한편으론,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남편상의 모습 중 하나를 인터넷에 남겼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무엇보다도 배우자가 커리어를 찾아가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약간의 기여를 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배우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관련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부부라는 인생의 파트너로 살아가는 과정 중 가사노동의 분담이 나름 중요한데, 우리의 경우은 내가 90%, 배우자가 10% 정도이다. 2016년 결혼한 이후부터 줄곧 그래왔다.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같은 선배로서의 아빠.

아이의 육아를 전담한지 벌써 3년이 흐르고 있다. 24개월까지 배우자가 주양육자였다고 하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56개월인 현 시점까지 아이의 주양육자는 아빠인 나다.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기간을 포함해 아이와 함께 아빠로서 잘 성장하고 있다고 나를 평가해본다.

나름 내 육아관을 짧게 적자면, 아이에게 인생을 먼저 살아본 친구같은 선배가 아빠의 모습이지 않나 싶다. 아이가 고민이 있을 때, 더 많은 경험을 해 본 사람으로써, 아이가 어떤 결정을 선택하는 데 있어 보다 나은 선택지를 제시해줄 수 있는 역할 정도로 내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올해 11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인기가 많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보다는 어린이집을 늦게 등원했지만, 코로나 기간동안 나와 함께 다양한 경험 등을 하며 보낸 시간 덕분이지, 놀이와 놀이를 조합하는 놀이마스터로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에게 인기쟁이라고 한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여, 같이 즐거워하는 놀이를 만든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등원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아이의 안부를 물을 정도이니 교우관계는 원만하게 잘 크고 있다.

회고를 쓰는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 가족 모두 제주도에 있다. 차를 가지고 완도를 통해 제주도로 들어왔다. 폭설 상황, 그리고 배를 타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지금 제주도에서 2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 또한 아이에게 아이의 세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거라고 믿고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나.

아이의 육아를 전담한 이후부터 노력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많이 부족한 부분이다. 배우자가 일을 하고 있지만, 나도 일을 한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본, 그리고 배우자를 통해 확인한 사실로는, 내가 글을 나쁘지 않게 쓴다는 점이다.(아직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보지 않았으니 잘 쓰는 편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특히, 배우자를 추천했던 글은 충분히 좋은 글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확인하니 살짝 자신감이 생겼다.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볼 생각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가 추천해 준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업에는 관심이 많이 생겼다.

또한 하이브아레나를 창업했을 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본 경험과 국내/글로벌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든 경험이 있다. 사람들의 연결을 돕는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이런 종류의 일을 구체적으로 뭐라하는지 모르겠다.

욕심을 하나 적자면, 내가 아이 육아에 전담했던 3년이라는 시간을 프로젝트의 매니징이라는 경력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기 때문이다. 육아는 대표적인 무급노동이자,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현실이다. 출산/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경력단절을 중요한 사회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 사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정작 해결책은 딱히 등장하고 있지 않다. 현재는 경력단절에 놓여있는 여성들의 취업을 중개해주는 플랫폼이 최선이라고 할까? 그런데 육아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매니징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경력단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육아가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 고강도 노동인지 알만한 사람을 알 것이다. 즉 생각을 바꿔보자, 관점을 바꿔보자가 내 생각이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하나의 사례가 되어, 작은 변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육아를 매니징 경력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현하기 시작한다면 분명히 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육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커피챗은 언제나 환영이다.

한 명의 시민.

올해 3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를 뽑는 선거가 있었다. 할로윈 시즌에, 이태원에서 158명이 죽는 비극적인 참사가 있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 장애인 등을 혐오하는 뉴스가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내 선택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지금의 리더를 선택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가장 중요하고, 음... 미래 세대는 태어나면 지들이 알아서 살아야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출생률 0.79명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 거 같다.

내 아이를 비롯한 미래 세대들에게 미안함과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요즘 등장하는 뉴스들을 보면, 과연 이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가 있나? 내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그들의 설 자리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다. 내가 속한 이 사회가 얼마나 망가질지 솔직히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미래 세대들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들이 살기에 좋은 사회는 되어야 하는게 지금 세대가 할 일이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육아를 하는 아빠로서,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해 작게나마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일을 찾을 생각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배우자가 즐겨 쓰는 표현 중에 마음에 딱 와닿은 표현이 있다. "내 인생의 이사진을 만들어야 한다."는 표현이다. 성장함에 있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또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라는 것인데, 내년에 나도 내 인생의 이사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