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모든 여성이 휴가를 낸다면? 3️⃣
1편과 2편을 통해서, 1975년 10월 24일에 벌어졌던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하루 휴무'와 이후 아이슬란드의 정책과 변화에 대해 알아봤다. 3편에서는 아이슬란드의 변화를 바라보며 든 생각들을 나눈다.
결정적 사건
아무래도 결정적인 사건은 1975년 10월 24일에 벌어진 '하루 휴무(Day Off)'이다. 그 시절의 많은 유럽 국가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일이었다. 그리고 많은 여성의 일자리가 교육, 서비스직에 한정되어 있었다. 대다수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임금이 높은 금융, 기술직 등의 분야에 종사했다.
많은 남성은 여성의 일을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막상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동시에 '하루 휴무'를 하니 사회가 마비되었다. 학교, 유치원의 선생님, 식당,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 은행에서 일하는 은행원,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항공기의 스튜어디스(현재는 승무원이 나은 표현이다.) 등을 살펴보면 주로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전부가 하루를 쉬니, 사회가 마비된 것이다. 2023년의 파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남성들의 모습을 사진과 같은 미디어로 찾을 수는 없지만, 많은 남성이 충분히 두려움을 느꼈다. 아이슬란드 남성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아래 BBC 기사를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It was a baptism of fire for some fathers, which may explain the other name the day has been given - the Long Friday.(일부 아버지들에게는 이날이 혹독한 시련의 날이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이 날이 '긴 금요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남성들은 위기를 느꼈고, 태도를 바꿨다. 다음 해(1976년)에 등장한 평등법, 5년 뒤인 1980년 선거를 통한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모여 만든 여성 동맹 정당이 여성 의원들을 당선시킨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발맞추어 다른 정당들도 여성 후보들을 내세워 당선시켰고, 여성 동맹 정당을 포함해 총 9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의회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자발적 정당 할당제(Voluntary Political Party Quotas)를 도입하였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각 정당들이 선거 후보자 명단에 최소 30% 이상의 여성 후보를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자발적으로 40% 이상을 제시하는 정당도 있었다.
또한, 기업 이사회 할당제(Gender Quota for Corporate Boards)도 큰 역할을 했다. 50인 이상 임직원으로 구성된 기업에게 이사회의 성별 균형을 요구했다. 강제 사항이며, 꽤 구체적이었다. 상장 회사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포함되어야 했다. 4명 이상의 경우에는 여성 비율이 최소 40%를 차지해야 한다. 비상장 회사의 경우에도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이 성별균형을 달성할 때까지 일일 부과된다. 그로 인해 2022년 기준, 경영진 및 이사회 의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 이다. 여성의 기업 고위직 진출을 촉진했고,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강화하였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여전히 낮은 수치라고 말한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목표는 2030년까지 남녀 성별 임금 격차를 0%로 만드는 것이다.
세대가 함께 한 경험
위의 기사들을 읽어보면 당시 20대였던 여성들이 참여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기사는 엄마를 따라 당시 참여했고 지금은 성인이 된 여성의 이야기다. 당시 시위와 관련된 참여했던 사람들이 적은 글들을 찾아보니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혹은 '할머니, 엄마와 함께' 참석한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1975년도의 '하루 휴무(Day Off)'가 2023년 파업까지 이어져왔다. 1975년도에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2023년, 어린 아이였던 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여 다시 그들의 자녀들과 참여한다.
즉, 대(代)를 이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자산이자,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여러 기사와 증언을 읽고 정리하면서, 나는 이런 세대를 아우르는 참여와 경험의 전수가 아이슬란드 성평등 운동의 핵심이자 미래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아이슬란드 여성에서 전세계 여성으로
폴란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로 알려진 2016년 10월 3일, 수천 명의 폴란드 여성들이 임신 중절법 강화에 반대하여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아이슬란드의 1975년 여성 파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여성들은 직장과 가사노동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정부가 제안한 임신중절 전면 금지법이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아르헨티나
2016년 10월 19일,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로 알려진 시위는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즈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여성 살해(femicide) 반대하는 목소리고 검은 옷을 입고 참여하였다. Ni Una Menos("한 명도 더 이상", 남성 폭력으로 희생되는 여성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운동은 남미 전체로 확산되었다.
미국
20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A Day Without a Woman'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이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여성들이 경제 및 사회 전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성별 임금 격차와 불평등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열렸다.
스페인
2018년 3월 8일, 스페인에서는 “If we stop, the world stops”라는 슬로건으로 여성들이 성별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이 날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직장과 가사노동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으며, 이는 아이슬란드의 여성 파업에서 영감을 받은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변화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이러한 세대를 아우르는 운동의 지속성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작년 아이슬란드 여성 파업의 경우, 지금 이만큼 좋아졌는데 왜 또 요구를 하느냐? 파업을 또 해야 하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즉, 충분히 변했고, 이제는 변화가 빠르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렇다. 과연 충분히 변했나? 아이슬란드는 14년 연속 성 격차 지수 1위를 달성한,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이미 충분히 변했기 때문에, 그 속도를 좀 천천히 하자고 당사자들에게 '기다려라'고 말할 수 있나? 기다리면 그 당사자들은 변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나? 아니다. 아이슬란드가 50년에 걸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가 마비될 정도의 충격이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려라'가 아닌 '지금 아니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변화를 만들었다. 1975년도의 세대가 사회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2024년의 세대가 그 혜택을 누린다.
한국 사회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서울 지하철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여성들의 성평등 요구 움직임등,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에 '기다려라'라는 메시지가 지배적이다. 한국 사회도 빠르게 변해왔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자는 거다. 혹은 더 중요한 의제가 있기 때문에 뒤로 미루자는 이야기를 한다. 즉, 미래 세대, 지금의 청소년,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가 보여준 세대를 아우르는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성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미루는 상황에서 변화는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가디언지 기사에 등장한 한 문구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We owe it to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o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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