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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모든 여성이 휴가를 낸다면? 1️⃣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여성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여성 인구의 90%가 하루 동안 '휴무'를 선언하며 사회를 마비시켰고, 여성 노동의 가치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놀라운 행동은 아이슬란드 성평등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단 하루, 모든 여성이 휴가를 낸다면? 1️⃣
Photo by Julien Riedel / Unsplash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 평소와는 다르다. 회사에 출근했더니, 여성 동료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사팀에 문의하니 모두 휴가를 냈단다. 오전에 커피를 마시려 카페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다. 점심 시간, 평소 즐겨 가던 식당도 문을 닫았다. 대형마트는 문을 닫았다. 편의점 한 두군데만 문을 열었다.

어린이집과 학교는 선생님들이 없어 수업이 불가능하다. 병원은 간호사들이 없어 응급실만 겨우 운영한다. 항공편은 승무원이 없어서 운행을 중단한다.

뉴스를 보니 전국의 모든 도시가 비슷한 상황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Covid-19같은 전염병인가? 전쟁이라도 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비슷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


놀라운 변화의 시작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약 25,000명의 여성들이 레이캬비크 광장에 모였다.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여성 인구의 90%가 모였다." - WOMEN'S HISTORY ARCHIVES

당시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약 21.8만명이었다. 그 중 여성은 약 10.8만명었다.

90%의 여성들이 모인 이 행사를 아이슬란드어로 'Kvennafrídagurinn', 영어로는 'Women's Day Off'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여성의 날 휴무'이다.

2023년, 이 행사는 더욱 강력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총 10만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24시간 파업(Strike)에 참여했다. 아이슬란드 인구의 4분의 1이 참여했다. 2023년 기준, 아이슬란드 인구는 약 37만 6천명으로, 우리 나라의 세종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Iceland PM joins crowd of 100,000 for full-day women’s strike
Katrín Jakobsdóttir says she wants nation to achieve full gender equality by 2030 as over a quarter of population attend event in capital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에서는 파업(Strike)라고 표현한다.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에 있는 유투브 영상이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여성 총리, 카트린 야콥스도티르(Katrín Jakobsdóttir)도 동참했으며, 영부인인 엘리자 레이드(Eliza Reid)는 "파업 중이라 이메일로 답장하기 어렵다."는 부재 중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참여한 1975년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된 24시간 파업이었다. 현재까지 파업은 7번 진행되었다.(1975년, 1985년, 2005년, 2010년, 2016년, 2018년, 2023년)


'휴무(Day off)'라는 이름의 파업

"처음부터 주최 측은 최대한 많은 참여를 목표로 했습니다. '파업(Strike)'이라는 표현은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고, 게다가 그것은 불법이었죠. 하지만 누구나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습니다." - WOMEN'S HISTORY ARCHIVES

'휴무(Day off)'로 정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심각한 불이익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지정하였다. 10월 24일은 '국제연합일(United Nation Day)'이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왜 행동으로 옮겼을까?

당시 배포된 편지다. 47,000부가 배포되었다고 한다. Copyright: WOMEN'S HISTORY ARCHIVES

왜 여성들의 휴무일인가?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는 여성들의 노동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10월 24일 유엔의 날에 하루 휴무할 것을 촉구합니다.

왜 모든 연령대의 여성와 여성 단체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 제안이 나오고 채택되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낮은 임금, 낮은 지위의 직업 광고에는 여성을 명시합니다.
  •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75%에 불과합니다.
  • 아이슬란드 노동조합 총회의 주요 협상단에 여성 대표가 없습니다.
  • 남녀 노동자의 월평균 수입 차이가 30,000 크로나(약 100파운드 또는 200달러)입니다.
  • 농부의 아내는 농민조합의 정회원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 주부에 대해 "일하지 않고 그저 집안일만 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 일부 남성 권위자들은 보육시설이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습니다.
  •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 아내의 노동 가치를 연간 175,000 크로나(약 500파운드 또는 1,100달러)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 구직 시 교육이나 능력보다 성별을 더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 주부의 경력을 노동 시장에서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여성의 사회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을 멈춤으로써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스스로와 다른 이들에게 보여줍시다.

국제 여성의 해 주제 아래 이 날을 기억에 남는 날로 만듭시다:
평등 - 발전 - 평화
여성의 날 휴무 집행위원회

WHY A DAY OFF FOR WOMEN? 편지 내용을 번역했다. 의역한 부분이 있으니, 참고 수준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날의 모습

1975년 10월 24일 금요일, 날씨는 하늘이 도와준다고 할만큼 정말 좋았다고 한다. 라디오에서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노래가 방송되었고, 모든 조간 신문의 사설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다루었다.

탁아소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도 문을 닫았다. 모든 대형 상점, 공장, 극장이 문을 닫았다. 거의 모든 것들이 그 날 하루 멈췄다. 주부들은 집 밖으로 나가 행사에 참여했다. 남편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출근하거나 집에 머물러야 했다. 요리와 기타 집안일은 남성의 몫이었다.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 광장에서 오후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5,000명의 여성들이 참여함으로써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도시 곳곳에 여러 개의 오픈 하우스가 있었고, 집회가 끝난 후 여성들은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셨다. 자원 봉사자들은 오픈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행사에 어울리는 노래와 연주를 선보였다.

저녁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행사의 대표자들이 이 행동에 대해 토론하고, 집회가 열린 전국 각지에서 행사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레이캬비크 외 지역에서도 20개가 넘는 집회가 열렸다.

반면, 많은 남성들에게 힘든 날이었다. 은행, 상점, 작업장, 사무실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몇몇 아이들은 아빠의 직장을 처음 가봤다. 아빠들에게는 가장 긴 금요일이었으며, 집안일과 육아를 책임져야했다.


2편에서 계속..

우연히 트위터에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파업에 대해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의 많은 리트윗이 발생해서 좀 놀랐습니다. 여튼 이 핑계를 삼아,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행동을 글로 열심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정리해보니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이뤄낸 성과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눠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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