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Billionaire Dad
트위터에서 아래의 이미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직 아이가 5살(한국나이 6살)이긴 하지만,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아빠들과는 달리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9개의 그림 중에서 나와 아이의 모습은 3번째 그림과 유사하다. 한동안 해당 이미지를 계속 봤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해보니 아쉬움 때문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안타까운 과거의 아빠들.
이제는 할아버지 세대가 된, 베이비 부머 세대의 아빠들은 항상 바빴다. 그들은 전쟁 직후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그들은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당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아빠는 집 밖(직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집에서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는 것이었다.
아빠들은 엄마들의 희생으로 인해,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을 누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직장에서 자신의 출세 혹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엄마들은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명목하에, 사회 진출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그저 대표적인 무임금 노동이니까, 어떤 댓가도 없었다. 아빠들이 벌어오는 임금이 유일한 보상인데, 그 결과 경제력의 주도권은 아빠들에게 넘어간 상황이 되었다. 엄마들은 그저 가사노동과 육아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베이비 부모 세대, 본인들의 고생을 자식 세대에 되물려주지 않아야겠다는 명분으로 자식에게 "내가 지금 왜 이 고생을 하는데,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 아냐."라고 조언을 빙자한 강요를 일삼았다. 그 결과, 자연스레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은 이러했다. 흔히 미디어에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아빠와 자식의 모습은 서먹하거나 소리치며 싸우는 게 일반적이다.
"아빠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특히 이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아빠들이 엄마들에게 양육을 맡긴 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포기해버렸으니까. 가사노동과 육아는 엄마, 여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방패삼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해버렸으니, 자녀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종종 아빠의 이미지를 ATM기기에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아빠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게 싫다면 과거에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특히 자녀들이 어릴 때..
"그러면 너는 나에 대해서 뭘 아냐?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어떤 아빠들은 자녀에게 위 질문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자녀가 영유아 및 미취학 아동일때,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나? 냉정하게 보자. 많은 경우,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부모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실제 아이들의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은 어른들에 의해 이뤄진다. 즉,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주도권은 아빠에게 있다."아빠가 나에 대해 뭘 하는데?"라는 질문에 서운하다고 위의 질문으로 자녀에게 되물으면 스스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했다고 확인하는 비참한 꼴이 연출된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벽은 더 단단해진다.
"육아는 엄마가.."라는 고정관념이 만든 현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조사를 참고하면, 청소년들이 고민의 대상으로 아빠를 선택하는 확률은 처참하다. 딸의 경우에는 1.6% 밖에 되질 않는다. 아들의 경우도 겨우 6.8% 이다. 해당 수치를 보고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를 선택하는 확률과 비교해서 본다면, 자녀들이 아빠와 친하지 않은거다. "아빠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거다. 아빠들이 육아를 하지 않아 생긴 결과가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지금까지 누적되어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와 더불어 많은 사회 현상들이 등장한다. 엄마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독박육아,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등장,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정부도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 돌봄 문제, 가장 심각하다는 저출산 문제 등이다.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빠들은 심각성을 잘 모른다.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엄마들의 희생(독박육아)으로 이뤄지는 돌봄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을...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부모들을 위해 저녁돌봄까지 제공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지만, 돌봄의 당사자는 항상 엄마, 정부/지자체, 학교(교육부)이다. 엄마 못지않게 중요한 돌봄당사자인 아빠는 항상 해당 논의에서 빠져있다. 논의에서 빠져있다면 아빠들이 먼저 나서서 끼워달라고 해야하지만, 먼 발치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꿈꾸는 미래의 모습
나의 경우에는 아이의 모유 수유가 끝나자마자 육아를 담당했다. 배우자의 사회진출을 응원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노력 중이다.
"부모 = 아이의 성장을 돕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아이가 정말 힘들어하면 당연히 도와주는 존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존재니까, 과거의 부모들이 여기서 실수를 많이 했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기대고 싶을 때 아이를 냉정하게/엄하게 대하면 독립적인, 강한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해왔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려면 그렇게 해야된다고..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아이는 심각한 고민이 있을 때, 부모가 아닌 다른 이를 먼저 선택한다. 부모가 내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까. 그로 인한 결과는 청소년의 고민상담 대상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다.
두번째, 아이의 도전을 옆에서 응원하는 존재다. 아이를 충분히 오래 관찰하고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부모 각자의 판단이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이 정도쯤은 내 아이가 혼자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그러면 부모는 기다려줄 수 있고 옆에서 응원해줄 수 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에게 믿음을 보여주는 부모를 신뢰한다. 안타까운 경우는 부모가 모든 걸 해결해버리는 경우다. 아이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 혹은 가능성을 부모가 뺏어버리는 꼴이 된다. 그러면서 왜 아이가 스스로 잘 못할까?를 고민한다.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믿어주느냐가 중요한데, 아이를 그만큼 잘 아느냐가 중요하다. 아이를 관찰하려면 부모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세번째,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알려주는 존재다. 훈육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아이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법은 각자 부모의 판단이다. 상황이 제각각이니까. 정답은 없다고 본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게 중요하다. 나도 노력 중이지만 정말 쉽지 않다. 다행히 내 아이의 경우는 스스로가 납득했다면,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하면서 꿈꾸는 미래는 이렇다. 아이가 성인이 되서 결혼하여 아이의 가족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아빠가 너희 나이와 비슷할때 할아버지가 이렇게 놀았어라고 알려줄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 미래가 세대를 거쳐 되물림되었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작은 소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점점 보기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첨부하는 트윗을 통해.
이미지의 원 출처 트윗을 첨부한다. 특히 아빠라면, 시간이 있을때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이 성인이 될때까지의 시간은 아빠들의 생각보다 길지 않다. 지금은 어렵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시간을 보내면 된다 생각한다면,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 현재 이 순간,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The Time Billionaire Dad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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