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in read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 Hidden

배우자의 커리어 도전을 위해 작성했던 추천 글을 계기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담아보려고 한다. Hidden이라는 이름처럼 조용히, 숨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할 계획이다.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 Hidden
Photo by Malik Earnest / Unsplash

"아내를 테크 리쿠르터로 추천합니다."라는 글을 작성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최초의 글은 내 블로그가 아닌 노션에 작성하였다. 오랜만에 설치해 둔 구글 애널리틱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접속했는지 알아봤다.

추천 글의 목적에 맞게, 배우자의 구직 기간인 2022년 1월부터 4월에 방문자가 집중되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적자면 3개월 동안 약 9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노션 글에 방문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작성하는 이 시점까지 누적 방문자 수는 약 1,100명에 달한다.

결과와 준비 과정

추천 글에 의해 만들어진 연쇄 반응으로 배우자는 구직 기간에 약 22개의 회사와 커피챗 및 미팅을 했다. 그 결과 현재는 플라네타리움이라는 회사에서 테크 리쿠르터로 근무하고 있다. 기존에 해왔던 일과는 다른, 배우자가 하고 싶은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였고, 현재 해당 직무로 일을 하고 있으니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셈이다.

배우자는 농담 삼아 구직활동에 있어 8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피드백이었다. 당시 글을 작성하며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배우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그리고 잘 아는 내가 추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냥 문득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약간의 확신이 있었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때마침 추천 글의 작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 배우자는 판교의 모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출퇴근 시간이 편도로 2시간, 왕복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서 전해 들은 일터의 조직 문화는 건강하지 않았다. 당시 팀장으로 입사한 배우자의 온보딩 과정을 경영진이 책임져야 함에도 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하였다. 알아서 적응하길 바랐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분노를 느꼈고, 추천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 큰 자극을 받았다.

글을 작성할 때 배우자가 HR 분야에서 일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개발자의 채용을 책임지는 구체적인 직무이니만큼, 개발자들과 소통을 잘한다. 이야기를 편히 나눈다. 등등 배우자의 강점을 어필하면 부족한 실무 경험을 넘어설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고 해당 글의 주된 요점으로 잡았다. 그리고 2번의 퇴고를 거쳐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나와 배우자의 공통 지인 중에서 진심으로 배우자를 평소에 응원하는,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추천사와 공유를 부탁했었다. 감사히 선뜻 응해주셨고, 그로 인해 의미 있는 입소문이 만들어졌다.

현재, 그리고 새로움.

작년 연말에 제주도로 2주간의 여행에서 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올해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나를 응원하고자 배우자가 링크드인에 짧은 소감과 응원을 남겼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당시 내가 작성한 추천 글이 인상 깊어 개인 아카이브에 저장해두었다는 글도 있다.

Hyekyung Hwang on LinkedIn: #인생최고의선택 #이상형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운 경험, 사회에서는 그런 경력은 경력이 아니라고 한다. 2년 동안의 육아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내겐 쉽진 않았다. 일을 해야했다. 창업을 통해서 다양한 일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진짜 잘하는 건 뭘까 했을 땐 그 또한 답을 쉽게…

시간이 흘렀지만, 어떤 형태로든 추천 글의 공유가 일어날 때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추천 글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는 부류의 피드백이 많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긍정적이다.

주로 배우자와 "사람과 사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가치관이 비슷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친구로 사귈 수 있을까? 등등 이런 류의 고민이다.

배우자는 직무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난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난다. 계중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관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도 아이 육아를 3년 넘게 전담하면서, 인간관계의 폭이 많이 좁아졌다. 가치관 등이 비슷한,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있다.

그래서 배우자의 아이디어 제안으로 일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일의 형식은 인터뷰 방식이다. 우리(배우자와 나)만의 기준으로 "이 사람 정말 괜찮다."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궁금한 것에 관해 물어보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 괜찮다는 기준은 아직 세부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그래도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첫 번째, 우리와 가치관이 비슷한 이들이다. 과거에 하이브아레나를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이 있는데, 우리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타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 타인과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 생각한다.

두 번째, 자기 일에 자신감이 있되, 타인을 존중하는 이들이다. 내 경험을 기반으로 적자면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의사소통도 잘한다. 이런 사람 중 다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의 이름은 Hidden.

인터뷰 이름에 대해 고민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배우자의 강점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와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인해 만들어진 추천 글의 입소문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배우자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았다.

테크 리쿠르터로 일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숨어있던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뭐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심지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그렇다.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실제 출판 여부는 아직 모르겠다. 다가올 미래에 벌어질 일이고, 도전 중인 일이다. 성공적으로 책을 쓴다면,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물론이고,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즉,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업을 찾기 전까지는 숨어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숨어있는, 알려지지 않은, 혹은 드러내기 어려운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라면, 디자이너라면, 마케터라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해당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능력과 자질이 필요하다 등의 인터뷰는 너무 많으니까.

재미있을 거 같아서 도메인 Hidden을 먼저 구입했다. 현재 배우자와 질문을 열심히 만드는 중이다.